2010. 12. 27.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12/17/2010, Fri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샌프란시스코에 다 와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갈 곳이 없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일기예보와는 달리 갑자기 비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짙은 안개 때문에 50m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저녁시간인데다, 온도차이 때문에 헬멧 실드에는 김이 뿌옇게 끼여서 앞도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실드를 열고 주행하자니 찬 빗방울이 얼굴을 때렸다. 한마디로 주행을 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 마땅한 숙소도 정해놓지 않고 지루한 고속도로를 달리던 우리는 무엇보다도 갈 곳이 필요했다. 비를 잠시라도 피할 곳이 필요했다.

 

그리곤 길가의 어느 햄버거 가게 앞에 잠시 모터사이클을 멈췄다. 어딜 가야하나.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우리를 재워줄 것인가. 정 안되면 남자 두 명이서 모텔이라도 가야하는 므흣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될 수 있으면 그 비용도 아끼고 싶었다.

 

그래. 교회를 가자. 출발할 때 준비해왔던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한인교회 리스트를 살펴보곤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어느 교회의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찍었다. 그리고 지체없이 빗 속을 뚫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언제는 대책이 있었나? 그냥 부딪히는 거지. Improvisando. 대책없이 즉흥적으로. 그게 바로 우리의 철학이니까. 설마 우릴 쫓아내기야 하겠어?

 

정말 쫓겨날 뻔 했다.

 

늦은 저녁 교회에 도착하고 나서 빼꼼히 두꺼운 현관문을 열고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가 마침 다음날 예배준비로 한창 바쁘시던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이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고 있습니다. 염치없지만 밖에 비도 오고 하니 하루만 좀 재워주십시오.”

 

적잖이 당황하시면서, 외부인을 재워주지 않는 것이 교회의 규정이니 마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나 모텔을 찾아보라고 하시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시는게 아닌가. 부끄러웠다.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만가지 거절을 다 당했던 우리였고 거절에 대한 나름의 면역도 생겼다고 믿었던 우리였는데, 그 순간 만큼은 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린 너무 절박했으니까. 지금 다시 나가서 새로운 숙소를 찾기에 시간은 이미 늦었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우리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다.

 

‘지금 이 시간에 어딜 가서 숙소를 찾는단 말이야? 다른 교회를 찾아가야 하나?’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찰나, 목사님은 어느새 따뜻한 커피를 내오셨다. 아, 이게 얼마만이냐. 머나먼 남미, 태양이 이글거리는 그곳에서 온 짙은 구릿빛 피부의 당신은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이요 구원이구나! 용현석 파트너는 진한 커피 한 잔에 다시 기운을 차리고 목사님께 다시 한번 간청했다. 차가운 마룻바닥이라도 좋으니, 추운 차고라도 좋으니, 제발 오늘밤만 재워달라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고백하건대, 난 기독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나마 구약을 공부했던 건, 대학생 시절 ‘서양철학’이라는 한 학기짜리 필수교양 수업 때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그 과목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성경은 과학적/이성적 분석의 영역에서는 인정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있고, 따라서 성숙한 지성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모든 걸 당연시 받아들이기보다 그 전에 독립적인 분석적 사고를 키우라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 동안 나는 기독교인들의 극단적인 폐쇄성과 배타성, 그들만의 독선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과 “봉사”라는 아름다운 본질을 왜곡하고 훼손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외국인들로 가득한 인사동 차 없는 거리에서 “No Jesus, Go Hell”이라는 섬뜩한 벌건 색 포스터를 가슴팍에 안고 예수를 믿지않는 자,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며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붓는 극히 일부의 기독교인들이 마치 기독교의 전체를 대변이라도 하는 냥 생각했었다. 또한 정신세계 만큼은 아직도 20세기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 기독교가 가진 공격적인 포교방식에 혀를 끌끌차면서도, 훈련병 시절 부자교회에서 주는 치즈버거가 가난한 절에서 주는 초코파이보다 더 좋았던 나였다.

 

따뜻한 교회 방바닥에 누워있으니, 일부 기독교인들의 폐쇄성과 배타성, 독선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내가 가진 폐쇄성과 배타성, 독선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히 일부의 모습을 보고 전체를 판단했던 어리석었던 나. 변변찮은 지식으로 기독교의 2000년 역사를 마냥 부정하려고 했던 나.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비논리적이라며, 차분히 앉아서 얘기조차 들어보려 하지 않았던 나.

 

내가 욕했던 기독교의 모습들은 결국 내가 가진 모습이었다. 결국 내가 문제였다. 그들이 그르게 보인 건, 내가 그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어리석게 보였던 건, 내가 어리석기 때문이었다.

 

결국 내 문제였다.

 

어쨌거나, 난 이제 금요찬양예배를 드리러 가봐야겠다. 따뜻한 잠자리를 선물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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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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